최근 수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와 사회보험급여(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가 경합하는 사안에서, 공단의 대위 범위와 피해자(수급권자)의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에 관하여 기존의 판례를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각 사회보험 영역별 핵심 대법원 판례의 판결 요지를 원용하고, 변경된 산정 방식을 도식화하였습니다.


1. 패러다임의 전환: 국민건강보험

공제 후 과실상계 국민건강보험

과거 실무는 피해자의 치료비 등 손해액에서 과실상계를 먼저 한 뒤 공단이 부담한 급여액 전액을 공제하는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근거로 이를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대법원 2021. 3. 18. 선고 2018다287935 전원합의체 판결

이와 같이 본다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그 손해 발생에 피해자의 과실이 경합된 때에는, 기왕치료비와 관련한 피해자의 손해배상채권액은 전체 기왕치료비 손해액에서 먼저 공단부담금을 공제한 다음 과실상계를 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산정하여야 한다.

[산정 방식 비교] (치료비 1,000만 원, 공단부담금 600만 원, 피해자 과실 20% 가정 시)

[산정 방식 비교] (치료비 1,000만 원, 공단부담금 600만 원, 피해자 과실 20% 가정 시)
산정 항목 종전 실무
(과실상계 후 공제)
변경된 실무
(공제 후 과실상계)
공단의 대위(구상) 금액 600만 원 (전액) 480만 원 (공단부담금 600만 원 × 가해자 책임비율 80%)
피해자의 직접 청구액 200만 원 320만 원 (본인부담금 400만 원 × 가해자 책임비율 80%)
공단의 최종 부담액 0원 120만 원 (공단부담금 중 피해자 과실 20% 해당분)

위 표를 비교해 보면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최종적으로 가해자 측(보험사)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종전 방식에서는 200만 원이었지만, 변경된 대법원 판례 기준을 적용하면 320만 원으로 120만 원이나 증가하게 됩니다. 아는 만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상금입니다

공단은 수급권자(피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공단부담금을 종국적으로 부담해야 하며, 피해자는 자신의 과실분을 제외한 본인일부부담금 상당액을 가해자에게 온전히 청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산재보험으로의 확장 1: 공동불법행위 사안

대법원은 건강보험에서 확립된 ‘공제 후 과실상계’ 법리를 산업재해보상보험 영역으로 확장하였습니다. 특히 산재 사고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가입 사업주와 제3자의 공동불법행위’ 사안에서 순환적 구상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2단계 공제 법리를 제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22. 3. 24. 선고 2021다241618 전원합의체 판결

이와 같이 본다면 산재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은 재해근로자가 제3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그 손해 발생에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된 경우에,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액은 보험급여와 같은 성질의 손해액에서 먼저 보험급여를 공제한 다음 과실상계를 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산정하여야 한다.
또한 산업재해가 산재보험 가입 사업주와 제3자의 공동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에도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범위는 제3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하여 보험급여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됨은 위와 같다. 따라서 공단은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 재해근로자를 대위할 수 없고 재해근로자를 위해 위 금액을 종국적으로 부담한다. 재해근로자가 가입 사업주와 제3자의 공동불법행위를 원인으로 가입 사업주나 제3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그 손해 발생에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된 때에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여야 한다.

[공단의 제3자 대위 범위 산출]

산재보험급여 후 공단이 제3자(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는 금액 산출은 다음의 단계를 거칩니다.

  1. 1단계 공제 (근로자 과실분 제한): [ 전체 보험급여액 ] – [ 보험급여액 × 재해근로자 과실비율 ]
  2. 2단계 공제 (사업주 과실분 제한): 위 1단계 산출액 – [ 재해근로자의 민사상 전체 손해액 × 사업주의 과실비율 ]

공단이 제3자에게 전액을 구상한 뒤, 제3자가 다시 사업주에게 사업주의 과실만큼 구상하는 ‘순환 소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처음부터 공단의 구상 범위에서 사업주 책임분을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재해근로자 역시 기존 손해액에서 보험급여를 먼저 공제한 후 잔액에 대해 과실상계를 적용하여 추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게 됩니다.


3. 산재보험으로의 확장 2: 사업주 단독 불법행위 사안

공제 후 과실상계에 따른 금액 차이

제3자의 개입 없이, 오직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 위반 등 단독 불법행위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하급심의 혼선이 있었으나,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공제 후 과실상계’가 적용됨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3다297141 판결

제3자의 개입 없이 산재보험 가입 사업주의 불법행위로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입었고 그 손해 발생에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된 경우 공단이 재해근로자를 위해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종국적으로 부담하는 점은 다르지 않으므로, 이 경우에도 위와 같은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액을 산정하여야 한다.

과거 실무처럼 사업주가 근로자의 높은 과실비율을 내세워 산재보험 처리만으로 추가 민사 손해배상책임을 0원으로 만드는 방어 논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손해액이 급여액을 초과하는 한, 사업주는 과실상계 후에도 남아 있는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4. 산재 구상권의 ‘제3자’ 개념의 재정립: 동일한 위험을 공유하는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의 대위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의 범위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18년 만에 종전 법리를 폐기하고 현장의 실질에 맞춘 ‘공동의 위험관계’ (Common Risk) 이론을 채택했습니다.

위 판결의 내용이 되는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게차에 철근 묶음을 싣고 이동하여 하역장소에서 지게발을 내리던 중, 대기하던 다른 근로자가 철근 고임목을 수정하기 위해 지게발 아래로 접근하자 지게차 운전자가 지게발의 작동을 멈추었으나 철근 묶음 일부가 해당 근로자의 머리 부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피해 근로자는 경부척수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지게차 운전자와 피해 근로자는 건설기계 대여업자 소속, 하청업체 소속으로, 서로 다른 업체 소속의 근로자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건설공사의 원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이 건설기계를 임차함과 아울러 임대인 또는 그 근로자로부터 건설기계의 운전노무까지 제공받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건설기계 임대인 등이 건설현장에서 건설기계를 운행하던 중 원수급인 등의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입힌 경우, 건설기계 임대인 등이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 2026. 1. 22. 선고 2022다214040 전원합의체 판결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에 따른 대위권의 행사범위는 보험료 부담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 또는 노무제공자들이 동일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내재하는 동일한 ‘위험’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범위를 파악함이 타당하다. 이와 같이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가해자와 그 사용자는 보험급여를 한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상대방인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건설기계 대여업자 소속의 지게차 기사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혼재하여 작업하다 사고가 발생한 경우, 과거에는 지게차 기사(또는 대여업자)를 제3자로 보아 공단이 구상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실질적인 지휘·명령 아래 동일한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제3자에서 배제되므로, 무리한 구상권 행사로 인한 분쟁이 대폭 축소될 전망입니다.


5. 3대 사회보험 대위권 법리의 통일: 국민연금

교통사고 등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연금공단이 장애연금 등을 지급한 후 가해자에게 대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대법원 2024. 6. 20. 선고 2021다299594 전원합의체 판결

국민연금법에 따라 연금급여를 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그 손해 발생에 피해자의 과실이 경합된 때에는 피해자의 손해액에서 먼저 연금급여액을 공제한 다음 과실상계를 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여야 하고,

건강보험, 산재보험에 이어 국민연금까지 대한민국 핵심 사회보험 3대 영역 모두에서 ‘수급권자(피해자) 이익 보호 우선 및 공단 대위 범위 제한’이라는 일관된 법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자동차보험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피해자들이 그 과정에서 본인에게 해당되는 국민연금이나 그 외 사회보장적 성격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이와 같은 중복 내지 이중 지급의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곤 합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에서, 과실비율이나 노동능력상실률도 중요한 사항이지만 정작 전체적인 손해배상금 산정 방식을 놓치게 되면 오히려 더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관련 글 : 과실상계와 책임제한 법리 : 손해의 공평한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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